2장. 암호화폐란 무엇인가?
앞서 살펴본 것처럼, 현대 금융 시스템은 근본적인 변화를 필요로 하고 있다. 중앙화된 통제, 높은 비용, 느린 처리 속도, 금융 소외 등 수많은 문제들이 새로운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대한 답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암호화폐다.
2008년 비트코인의 등장은 화폐와 금융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중앙화된 신뢰 체계 대신, 수학과 암호학에 기반한 새로운 형태의 신뢰 시스템을 제시한 것이다. 이는 마치 인터넷이 정보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것처럼, 가치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암호화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 기술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블록체인은 어떻게 작동하며, 왜 이것이 신뢰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수 있는지 알아보자.
블록체인의 기본 개념
블록체인이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블록체인을 설명할 때 '분산 원장 기술'이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맞는 말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블록체인의 진정한 개념을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의 일상에서 더 친숙한 예시를 통해 이해해보자.
은행에 돈을 맡기면, 그 기록은 은행의 중앙 컴퓨터에 저장된다. 이런 은행 중앙 컴퓨터의 데이터베이스에는 모든 고객들의 거래기록과 잔고를 비롯한 금융 정보가 전부 저장되어 있다. 그런데 만약 이 컴퓨터가 해킹을 당하거나 고장 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의 소중한 자산은 안전할까?
블록체인은 이 문제에 대한 매우 영리한 해답을 제시한다. 하나의 중앙 컴퓨터가 모든 정보를 관리하는 대신, 전 세계의 수많은 컴퓨터가 똑같은 기록을 공유한다. 한 컴퓨터의 기록이 손상되더라도, 다른 모든 사람들이 정확한 기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스템은 안전하게 유지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기술적 혁신을 넘어 우리가 신뢰를 구축하는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은행이나 정부와 같은 중앙 기관을 신뢰했다. 하지만 블록체인은 수학과 암호학에 기반한 새로운 형태의 신뢰를 제시한다.

블록체인 기술은 장부의 보관 및 검증의 권한을 다수에게 분산시킴으로써 부패 혹은 방만해질 수 있는 중앙 기관보다 더 믿을 수 있는 신뢰체계를 형성했다. (출처: CFTE)
블록체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블록체인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흔히 겪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예를 들어, 동아리에서 회비를 관리한다고 가정해보자. 보통은 한 사람이 회비를 모아 예산을 정리하고, 지출 내역을 기록한다. 하지만 그 사람이 실수로 잘못된 금액을 기록하거나, 기록을 잃어버리면 문제가 생긴다.
이제 모든 동아리원이 회비 내역을 스마트폰 앱에 동시에 기록하고, 각자의 기록이 자동으로 동기화된다고 상상해보자. 모두가 같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가지고 있으며, 데이터를 변경하려면 모든 동아리원의 승인이 필요하다면, 훨씬 안전하고 투명한 시스템이 될 것이다.
블록체인도 이와 비슷한 원리로 작동한다. 누군가 거래를 시작하면, 이 정보는 네트워크에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 전파된다. 참여자들은 이 거래가 유효한지 검증하고, 충분한 수의 참여자가 거래가 유효하다고 확인하면, 이 거래는 '블록'이라는 단위로 묶여 기존의 기록들에 추가된다. 이렇게 블록이 체인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블록체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모든 과정이 수학적으로 검증 가능하다는 것이다. 마치 1+1=2라는 사실을 누군가가 보장해주지 않아도 우리가 믿는 것처럼, 블록체인의 거래도 그 자체로 신뢰할 수 있다. 더구나 한번 기록된 내용은 수정이 불가능하다.
블록체인의 핵심 기술
블록체인의 안전성과 신뢰성은 세 가지 핵심 기술의 조화로운 결합에서 나온다. 다음의 실생활의 예시들을 통해 살펴보자.
첫 번째 핵심 기술은 '암호화' 기술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이메일 시스템을 생각해 보자. 이메일 주소는 누구나 알 수 있지만, 이메일 계정에 접근하려면 비밀번호가 필요하다. 블록체인의 '공개키 암호화'도 이와 비슷하다. 거래를 받을 수 있는 주소(공개키)는 누구나 공유할 수 있지만, 그 주소에 보관된 자산을 이동하려면 개인키라는 비밀번호가 필요하다.
두 번째는 '해시 함수'라는 기술이다. 이는 마치 우리의 지문과도 같다. 각자의 지문이 고유하듯이, 해시 함수는 어떤 데이터든 고유한 '디지털 지문'으로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길고 복잡한 계약서를 해시 함수에 넣으면, 그 문서만의 단순하고 고유한 값으로 변환된다. 만약 계약서의 내용이 단 한 글자라도 바뀐다면, 완전히 다른 해시값이 새로 생성되어 내용이 조금이라도 변조되었는지 즉시 확인할 수 있다.

소문자와 대문자로 작성된 같은 내용의 텍스트도 다른 기록으로 인식하여 각각 다른 해시값이 생성된다. 각 기록의 고유한 해시값은 블록들의 변조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한다. (출처: CFTE)
세 번째로 중요한 것은 '합의 알고리즘'이다. 이는 블록체인이 가장 혁신적으로 해결한 문제이자, 이해하기 어려운 핵심 개념 중 하나이다. 쉽게 설명하면, 합의 알고리즘은 "누가 진짜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가?"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모임에서 만남 날짜를 정하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각자 다른 날짜를 선호할 수 있지만, 결국 다수결을 통해 하나의 날짜로 합의하게 된다.
블록체인의 합의 알고리즘도 이와 비슷하다. 다만, 그 과정은 훨씬 정교하고 수학적이다. 모든 참여자가 데이터를 공유하고, 특정 기준에 따라 다수가 동의하는 데이터를 "진실"로 인정한다. 이렇게 합의된 데이터는 모든 사람에게 동시에 저장되고, 아무도 임의로 변경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합의 알고리즘의 가장 큰 특징은 '탈중앙화된 신뢰'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듯이, 블록체인에서는 참여자들의 합의를 통해 진실이 결정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선거에서는 투표 집계를 특정 기관이 담당하지만, 블록체인에서는 모든 참여자가 함께 검증하고 확인한다.
비트코인의 경우 '작업증명(Proof of Work)'이라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는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것과 같다. 문제를 푸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답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은 매우 쉽다. 마치 복잡한 암호를 푸는 과정처럼, 블록체인은 데이터를 검증하는 데 많은 노력을 들이는 대신, 그 결과를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블록체인의 보안 메커니즘
블록체인의 보안은 마치 조선 시대의 견고한 성곽과 같다.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벽, 망루 등 여러 겹의 방어 체계를 구축했듯, 블록체인도 다양한 차원의 보안 메커니즘을 통해 데이터를 보호한다. 이는 기술적 방어를 넘어 경제적, 사회적 요인까지 포함하며, 다층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먼저 블록체인 보안의 핵심은 암호학적 기술에서 출발한다. 거래 데이터를 보호하는 데 사용되는 공개키 암호화 방식은 현대 수학과 컴퓨터 과학의 성과를 응집한 기술이다. 이를 통해 거래 데이터는 안전하게 이동하며, 개인키로 서명된 거래는 누구나 검증할 수 있지만, 개인키 자체는 절대 노출되지 않는다. 이는 금고의 자물쇠와 같으면서도 훨씬 더 강력하다. 이 디지털 금고를 해독하려면 현재의 컴퓨팅 기술로도 수백 년이 걸릴 정도로 복잡한 암호를 풀어야 한다.
하지만 블록체인의 보안은 암호학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블록체인은 중앙 서버가 아닌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모든 노드가 데이터를 공유하고 검증하는 분산 네트워크로 운영된다. 이는 단일 장애점(Single Point of Failure)을 제거하여 네트워크를 어떤 형태로도 쉽게 파괴할 수 없게 만든다. 마치 중요한 문서를 한 사람이 보관하는 대신, 모든 사람이 복사본을 가지고 함께 확인하는 것처럼, 공격자가 문서를 조작하려면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수백만 명의 데이터를 동시에 수정해야 하므로 사실상 불가능하다.

24년 12월 구글이 양자 칩을 공개하면서 암호화폐 시장은 일시 하락했다. 하지만 양자컴퓨터의 상용화는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며, 블록체인 생태계도 양자 기술에 대한 대비를 꾸준히 하고 있다. (출처: Forbes)
블록체인의 또 다른 독특한 보안 메커니즘은 경제적 설계에서 나온다. 블록체인을 공격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막대한 비용이 들도록 설계되어 있다. 비트코인의 경우 네트워크를 손상시키려면 전체 네트워크의 51% 이상의 채굴 능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는 엄청난 전력 소비와 하드웨어 비용을 요구한다. 이는 은행 금고를 부수는 데 드는 비용이 금고 안에 있는 돈보다 많다면, 공격자가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는 것과 같다. 블록체인은 이러한 공격을 비합리적이고 비경제적으로 만들어 네트워크를 더욱 안전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블록체인의 보안은 사회적 신뢰와 합의에 기반한다.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사용자는 규칙을 준수하며, 이를 통해 전체 시스템의 안정성을 유지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통화가 종이조각임에도 화폐로 인정받는 이유는 사회적 합의 덕분이다. 블록체인에서도 사용자들은 네트워크의 규칙과 데이터를 신뢰하기 때문에 거래 기록이 안정성과 가치를 가진다.
결과적으로 블록체인의 보안은 암호학적 기술, 분산 구조, 경제적 설계, 그리고 사회적 신뢰가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이루어진다. 이 모든 요소가 상호 작용함으로써 블록체인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신뢰 모델을 제시한다.
블록체인의 한계와 과제
모든 혁신적인 기술이 그러하듯, 블록체인도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가지고 있다. 마치 초기의 인터넷이 속도와 안정성의 문제를 겪었던 것처럼, 블록체인도 성장 과정에서 여러 가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가장 큰 과제는 '확장성' 문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도시의 교통 시스템을 떠올려볼 수 있다. 작은 마을의 도로는 차가 몇 대 지나다니는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도시가 성장하면서 차량이 늘어나면 교통 체증이 발생하고, 더 넓은 도로와 효율적인 교통 시스템이 필요해진다. 블록체인도 비슷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면서 네트워크가 혼잡해지고, 거래가 느려지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접근 방식이 제안되고 있다. '라이트닝 네트워크'와 같은 기술은 마치 고속도로를 새로 만드는 것과 같다. 모든 거래를 메인 네트워크에서 처리하는 대신, 일부 거래는 별도의 채널에서 처리하는 방식이다. 또 다른 접근 방식은 블록체인 자체를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는 마치 기존 도로를 더 똑똑하게 만들어서 더 많은 차량이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중요한 과제는 '에너지 소비' 문제다. 특히 비트코인의 작업증명 방식은 상당한 전력을 소비한다. 이는 마치 자동차의 초기 역사에서 연비와 환경 문제가 중요한 과제였던 것과 비슷하다. 전기차가 이 문제의 해결책이 된 것처럼, 블록체인도 '지분증명'과 같은 새로운 방식을 통해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려 노력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아이레스의 야경.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연간 전력 소비량은 132.2 TWh로 이는 아르헨티나(121 TWh), 노르웨이(124 TWh), 스웨덴(123 TWh) 같은 국가의 전체 전력 소비량보다 많다. (출처: Reddit)
세 번째 과제는 '사용성'이다. 현재의 블록체인 기술은 일반 사용자들에게는 여전히 어렵고 복잡하다. 이는 마치 초기의 컴퓨터가 전문가들만 사용할 수 있었던 것과 비슷하다. 개인키 관리, 가스비 계산, 주소 확인 등 많은 부분이 일반 사용자들에게는 부담이 된다. 하지만 IT 산업이 발전하고 여러 혁신들을 통해 컴퓨터가 점차 사용하기 쉬워진 것처럼, 블록체인 기술도 더 직관적이고 안전한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암호화폐의 역사와 주요 특징
암호화폐의 탄생 배경
2008년 가을, 전 세계는 전례 없는 금융위기를 맞이했다.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시작된 위기는 도미노처럼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수많은 사람들이 평생 모은 재산을 하루아침에 잃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내 자산의 가치가 몇 십년 뒤에도 유지될 수 있을까? 방만한 거대 금융 기관들을 계속해서 믿을 수 있을까?"
바로 그때,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인물이 한 논문을 인터넷에 올렸다. '비트코인: P2P 전자화폐 시스템'이라는 제목의 이 논문은, 앞서 우리가 살펴본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화폐 시스템을 제안했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여러가지 기술과 개념을 결합하여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디지털 신뢰 시스템을 만들었다. 사토시가 고안한 이 기발한 아이디어는 인류의 부와 금융의 역사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출처: Bitcoin.org)
비트코인의 등장은 돈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역사적으로 돈의 가치는 항상 무언가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처음에는 금이나 은과 같은 귀금속 자체가 돈이었고, 나중에는 그러한 귀금속에 기반을 둔 지폐를 사용했다. 1971년 금본위제가 폐지된 이후에는 정부와 중앙은행의 신용이 화폐 가치의 기반이 되었다.
비트코인은 이러한 전통적인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을 제시했다. 더 이상 정부나 중앙은행의 보증은 필요 없었다. 대신 수학과 암호학, 그리고 네트워크 참여자들의 합의가 화폐의 기반이 된 것이다.

사토시 나가모토로 가장 유력한 인물은 미국의 개발자 할 피니다. 그는 사토시로부터 처음 비트코인을 수령받았고 초기 버그를 수정했다. 그는 비트코인이 처음 구동된 2009년 루게릭병을 진단받았고 2014년 58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사토시의 비트코인 보유량은 약 110만개다. (출처: Independent)
암호화폐의 기술적 진화
비트코인의 등장 이후, 암호화폐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이는 마치 컴퓨터가 처음에는 단순한 계산기에서 시작해 지금은 인공지능을 구동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된 것과 같다. 이러한 진화 과정은 크게 세 세대로 나눌 수 있다.
1세대는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단순 송금' 시대이다. 비트코인은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디지털 송금 시스템을 처음으로 구현했다. 비트코인은 이제 디지털 세계의 금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실제 금처럼 채굴을 통해 새로운 비트코인이 만들어지고, 그 희소성으로 인해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2세대의 시작을 알린 것은 2015년 이더리움의 등장이었다. 이더리움은 '스마트 계약'이라는 혁신적인 개념을 도입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온라인 예약 시스템을 떠올려 보자. 항공권을 구매할 때 일정 금액을 결제하면 즉시 예약이 완료되고, 전자 티켓이 발급된다. 별도의 상담원이나 종이 계약서가 필요하지 않다. 스마트 계약도 이와 유사하게 작동한다.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계약이 자동으로 실행되어 복잡한 중간 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
이더리움의 등장으로 암호화폐는 단순한 '돈'을 넘어 하나의 '플랫폼'으로 발전했다. 이는 마치 인터넷이 단순한 정보 교환 수단에서 시작해 오늘날에는 전자상거래, 소셜미디어, 스트리밍 서비스 등을 모두 구동하는 플랫폼이 된 것과 비슷하다. 이더리움 위에서는 금융 서비스, 게임, 예술 작품 거래 등 다양한 응용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더리움의 DeFi(탈중앙 금융) 생태계. 2015년 탄생한 이더리움 네트워크에서는 현재까지 4,000개 이상의 DApp, 500만개 이상의 스마트 컨트랙트, 800개 이상의 DeFi 프로토콜이 생성되었다. (출처: The Block)
3세대의 암호화폐들은 이전 세대들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장 큰 과제는 '확장성'이다. 이는 마치 초기 인터넷이 전화선을 통해 느린 속도로 연결되다가, 점차 광케이블과 5G 네트워크로 발전한 것과 비슷하다. 솔라나, 카르다노와 같은 새로운 프로젝트들은 초당 수만 건의 거래를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암호화폐의 종류와 분류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돈의 형태를 살펴보면, 각각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현금이 있고, 체크카드가 있고, 신용카드가 있다. 또 상품권이나 지역화폐 같은 특수한 형태의 화폐도 있다. 이처럼 암호화폐 세계에도 각기 다른 목적과 특성을 가진 다양한 종류가 존재한다.
첫 번째는 '지불형 암호화폐'로 비트코인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실제 화폐처럼 가치를 저장하고 전송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 디지털 세상의 현금이라고 할 수 있다. 지불형 암호화폐의 가장 큰 장점은 국경을 넘어서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송금할 때, 은행을 통하면 여러 단계를 거치고 높은 수수료가 발생하지만, 비트코인을 사용하면 몇 분 안에 적은 수수료로 전송이 가능하다.
두 번째는 '플랫폼형 암호화폐'다. 이더리움으로 대표되는 이 유형은 단순한 송금을 넘어서, 다양한 서비스와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이는 마치 스마트폰 운영체제와 비슷하다.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폰이 단순한 통화 기능을 넘어 다양한 앱을 실행할 수 있는 것처럼, 이더리움 위에서도 금융 서비스, 게임, 예술 작품 거래 등 다양한 서비스가 운영될 수 있다.

이더리움의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은 “이더리움은 금융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더리움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탄생한 플랫폼으로서 경제를 운영하고 거버넌스를 구축할 수 있는 운영체제의 역할을 한다. (출처: HIR)
세 번째는 '스테이블코인'이다. 이들은 달러나 원화와 같은 법정화폐와 가치가 연동된 암호화폐다. 대부분의 암호화폐가 가격 변동이 심한 것과 달리, 스테이블코인은 안정적인 가치를 유지한다. 이는 마치 우리가 해외여행을 갈 때 환전을 하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암호화폐 시장에서 스테이블코인은 일종의 안전한 피난처 역할을 하며, 거래소들 사이의 자금 이동을 원활하게 만드는 윤활유 역할도 한다.
네 번째로 '유틸리티 토큰'이 있다. 이들은 특정 서비스나 플랫폼 내에서만 사용되는 일종의 이용권이나 회원권과 같은 개념이다. 마치 온라인 게임의 게임 머니처럼, 특정한 생태계 안에서만 가치를 가진다. 예를 들어 어떤 분산형 클라우드 저장소 서비스에서는 저장 공간을 이용하기 위해 해당 서비스의 유틸리티 토큰이 필요할 수 있다.

XRP는 지불형 암호화폐와 유틸리티 토큰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24년 12월 리플랩스는 별도의 스테이블코인(RLUSD)도 출시했다. 이러한 하이브리드적 특성은 리플의 사업간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다.
암호화폐 지갑과 보관
일반적인 지갑이 현금과 카드를 보관하는 곳이라면, 암호화폐 지갑은 조금 다른 개념이다. 실제로 암호화폐 지갑에는 코인이 '들어있지' 않다. 대신 각자의 코인에 접근할 수 있는 '열쇠'가 들어있다. 은행의 금고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금고에 있는 귀중품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열쇠가 필요한 것처럼, 블록체인에 기록된 우리의 코인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열쇠가 필요하다.
이 '열쇠'는 두 가지로 구성된다. 하나는 '공개키'로, 계좌번호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 주소를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면 그 사람이 우리에게 코인을 보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개인키'다. 이것은 절대로 타인에게 알려주면 안 되는 비밀번호와 같은 것이다. 개인키가 있어야만 지갑의 코인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암호화폐 지갑은 크게 '핫월렛'과 '콜드월렛'으로 나눌 수 있다. 이 구분은 마치 우리가 현금을 지갑에 넣어 다니는 것과 은행 금고에 보관하는 것의 차이와 비슷하다. 핫월렛은 인터넷에 연결된 상태로 사용하는 지갑이다. 스마트폰 앱이나 웹 기반의 지갑이 여기에 속한다. 사용하기는 편리하지만, 해킹의 위험이 있다.
반면 콜드월렛은 인터넷과 완전히 분리된 상태로 보관하는 지갑이다. USB와 비슷하게 생긴 하드웨어 지갑이 대표적이다. 보안성은 뛰어나지만, 사용이 다소 불편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중요한 보석을 은행 금고에 보관하는 것과 비슷한데, 안전하지만 사용할 때마다 은행에 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는 것과 같다.

영국의 제임스 하우얼스는 비트코인 7,500개가 담긴 콜드월렛(하드 디스크)을 쓰레기로 오인하려 버렸다. 그는 10년째 잃어버린 콜드월렛을 찾고 있다. (출처: BBC)
지갑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안'이다. 전통적인 은행 계좌는 비밀번호를 잊어버려도 본인 확인을 통해 다시 찾을 수 있지만, 암호화폐 지갑의 개인키를 잃어버리면 영원히 그 코인에 접근할 수 없게 된다. 실제로 약 20%의 비트코인이 이렇게 영원히 잃어버린 개인키 때문에 접근이 불가능한 상태로 남아있다고 추정된다.
암호화폐의 경제학
암호화폐는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서는 완전히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지금까지 인류가 사용해온 모든 화폐는 누군가의 신뢰를 기반으로 했다. 금이나 은과 같은 귀금속은 그 자체의 가치를, 달러 같은 법정화폐는 정부의 신용을 기반으로 했다. 하지만 암호화폐는 수학과 암호학이라는 객관적이고 검증 가능한 원리에 기반한다.
암호화폐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화폐 공급 방식의 차이다. 전통적인 화폐는 중앙은행이 경제 상황에 따라 공급량을 조절한다. 때로는 더 많은 돈을 발행하기도 하고, 때로는 시중의 돈을 회수하기도 한다. 이런 조절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이 발생한다.
반면 대부분의 암호화폐는 총 공급량이 미리 정해져 있다. 비트코인의 경우 총 발행량이 2,100만 개로 제한되어 있다. 마치 금의 총량이 제한되어 있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새로운 비트코인은 정해진 일정에 따라 소량씩 발행되며, 이 일정은 수학적 알고리즘에 의해 엄격하게 통제된다.

현재 이미 90% 이상의 비트코인이 발행되었으며, 마지막 비트코인이 채굴되는 시점은 2140년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제한된 발행량은 차세대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의 비트코인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출처: River F.)
또한 암호화폐의 가장 혁신적인 경제학적 특징 중 하나는 '프로그래밍 가능한 화폐'라는 개념이다. 기존의 돈은 단순히 가치를 저장하고 전달하는 기능만 했지만, 암호화폐는 특정한 조건이나 규칙을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돈은 오직 교육비로만 사용할 수 있다" 또는 "매달 1일에 자동으로 월세가 지급된다"와 같은 조건을 화폐 자체에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암호화폐의 특징은 '프로그래밍 가능한 경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정부가 지급하는 복지금이 오직 의료비나 교육비로만 사용되도록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 또는 예술가가 자신의 디지털 작품을 판매할 때, 향후 재판매가 이루어질 때마다 자동으로 수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설정할 수도 있다. 이는 우리가 경제 활동을 조직하고 관리하는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암호화폐가 세계에 가져올 수 있는 또 하나의 큰 변화 중 하나는 '금융 민주화'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14억 명의 성인이 은행 계좌가 없이 살아가고 있다. 신분증이나 주소 증명과 같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은행이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지역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암호화폐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한 농부가 수확한 작물을 팔고 대금을 받아야 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근처에 은행이 없다면 현금으로 거래해야 하고, 이는 도난의 위험이 있다. 하지만 암호화폐를 사용하면 스마트폰으로 안전하게 대금을 받고 보관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 농부는 전 세계 어느 구매자와도 직접 거래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금융 민주화는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서는 사회적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 지금까지 금융 서비스는 은행이나 대형 금융기관들의 전유물이었다. 이들은 수익성이 높은 고객과 지역에만 서비스를 제공했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인 금융 서비스조차 이용하지 못했다. 암호화폐는 이러한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혁신적인 가능성 뒤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있다. 기술적으로는 확장성, 에너지 효율성, 사용자 경험 등을 개선해야 한다. 제도적으로는 적절한 규제 체계를 마련하고, 기존 금융 시스템과의 조화로운 공존 방안을 찾아야 한다. 사회적으로는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고, 새로운 기술에 대한 교육과 이해를 높여야 한다.
이러한 과제들은 결코 작지 않다. 하지만 인터넷이 초기의 기술적 한계와 불안정성을 극복하고 오늘날 우리 삶의 필수적인 부분이 된 것처럼, 암호화폐도 이러한 과제들을 하나씩 해결하며 발전해 나갈 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비트코인이 만들어낸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화폐의 새로운 기능을 구현하고자 등장한 리플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 리플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개발되었으며, 어떤 생태계와 기술을 활용해 이를 실현하려는 것일까?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미래에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